14 층 게이
우리 동 14 층에는 바텀인 게이가 한 명 살고 있다.

첨에 언뜻 봤을 땐 아줌마인 줄 알았었다.

가까이서 자세히 보니까 아저씨다. 나이는 40 대 중반쯤 되어 보인다.

아줌마 같다고 해서 그 사람이 여장을 하고 다닌다는 소리는 아니다. 보통은 멋진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다.

작년 겨울쯤에 그 사람이 20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애를 데리고 온 것을 봤다.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다.

상대는 탑일 터인데, 탑인 그 아이가 화장품 얘기를 하고 있었다. 크리니크 남성용인데, 약간 비싸다고 하니까

바텀인 그 사람은 "그래? 비싸? 뭐.. 알았어. 내가 사 줄께." 그러고 있었다. 크리니크는 비교적 저가인데, 비싸다고 하는 걸 보니까(물론 크리니크가 저가 화장품은 아니지만, 대체로 동성애자들은 소비적인 물품에 드는 돈에는 인색하지 않기 때매... 그리고 게이들은 레즈비언들과 달리 대부분 부자이다) 아마도 한 라인 전체를 다 사 줄 모양이다. 그러면 한 30 만원 든다.

나는 그 장면을 언니랑 같이 봤는데, 언니랑 나의 의견이 달랐다. 나는 그 탑이 돈을 보고 그 바텀을 만나는 거라고 하면서 게이들은 불쌍하다고 했고...(레즈비언들은 일부일처제를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, 게이들은 그렇지 않다. 따라서 나이 들은 게이는 돈이 필요하다)

언니는 그게 아니라 바텀이 돈을 가지고 어린애를 꼬시는 거라고 했다.

그 중에 어느 것이 진실일지는 모르겠는데, 나는 어째 그 14 층 바텀이 나쁘게 보이질 않는다. 거기엔 까닭이 있다. 우선은 돈을 가지고 애를 꼬시는 거라면, 우리가 듣는 데서 사준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... 어차피 그 14 층 사람과 우리는 서로 정체를 알고 있잖은감!

그리고 진짜 이유는 이거다.

한 번은 여름에 봉자를 산책 데리고 나갈 때, 역시 엘리베이터에서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. 나는 안에 탑을 입고 겉에 언니 옷인 하늘색 테가 둘러 있는 농구티를 겹쳐 입고 있었다. 아래는 반바지. 그건 여자가 아니면 입을 수 없는 차림이다. 물론 남자도 입을 수 있지만, 내 말은 바텀은 입을 수 없는 차림이란 소리다. 부치가 양복을 입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. 나는 비록 덩치가 좀 있지만 ㅠㅠ 대신 팔다리가 길고, 그 옷은 체형의 결점을 잘 가려주는 데다가 옷이 이쁘기 때매 여름에 산책할 때 잘 입었었다.

그 사람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를 보자마자 얼굴이 환해지는데, 그건 마치 "와... 여자다!" 하는 것 같달까, 말로 한 것은 아니지만 꼭 봉자가 지가 굉장히 예쁘다고 생각하는 푸들이나 마르티스를 볼 때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. 짙은 화장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난 여자다! 이렇게 온 몸으로 주장하는 외관은 아니지만, 그건 그냥 자연스런 중성적인 여자의 모습이다. 바텀이나 부치가 진짜 여자 같거나 진짜 남자 같은 것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. 그런 사람이 있다면, 그건 트랜스젠더인 것이고.

암튼 그렇게 좋아하는 표정을 확 드러내는 사람이 돈으로 애를 꼬시는 더리한 인간일 것 같지는 않다는 거다.

한동안 안 보이다가 오늘 또 마주쳤다. 시장을 봤는지, 대형할인마트의 비닐을 양손에 들고, 모범택시에서 내리고 있었다. 전에도 본 적이 있는 장면인데, 같은 모범택시일까. 옷은 역시 트레이닝복이다; 그 사람은 나보고 "또 트레이닝복에 강아지를 데리고 있다." 이러겠지만.

내가 여기서 이사가기 전까지는 함 말이라도 해 볼 수 있을란가. 오늘은 "14 층이져?" 하고 내가 층도 눌러주고 그랬는데 글타아니다 말도 없더라. 보통 아줌마였으면 얘기를 텄을 텐데, 오히려 나라서 더 말을 붙이기가 힘든 것일수도.
by 개털 | 2006/10/15 22:44 | 트랙백 | 덧글(3)
트랙백 주소 : http://anoucha.egloos.com/tb/2634248
☞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(트랙백 보내기) [도움말]
Commented by 알밥 at 2006/10/16 10:39
마음 속의 숙제 - 말 해보기. 크흐흐;;
Commented by 개털 at 2006/10/16 23:25
그건 그 게이의 숙제일지도? 알고보면 소심해서 그렇지 왕수다일지도요... 흐흐흐.
Commented by ㅊㅍ at 2009/07/18 09:24
스무살 청년이 그사람의 조카는 아닐까요???

:         :

:

비공개 덧글

<<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>>